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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변동 중고차시장①] 대기업의 '국산 인증중고차' 등판, 게임체인저 자처 본문
국내 중고차 시장이 지난 9년간 걸어놓았던 빗장을 풀고 대기업을 수용한다. 중소사업자들만의 사업영역으로 남겨둘 명분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 당국의 결단이다. 이번 결단 이후 업계의 서로 다른 곳에서 환영과 반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불량차를 의미하는 '레몬(lemons)'대신 좋은 차를 뜻하는 '피치(peaches)'가 한국의 중고차 시장에 가득 담길 수 있을까. 공은 대기업들에게 넘어갔다.
대기업이 지난 2013년 이후 9년만인 올해 국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티켓'을 얻었다.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라는 진입장벽이 허물어지길 별러온 대기업들의 청사진은 신중하지만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대기업들이 최근 중고차 시장에 던진 출사표엔 전형적인 레몬(lemon) 시장으로 일컬어져온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시장 주체들의 염원들이 두루 반영됐다. 레몬은 북미 지역에서 '오렌지로 잘못 보고 산 레몬'과 같이 불량품을 지칭하는 관용어로 쓰인다.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올해 가장 먼저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비전을 발표한 대기업은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기아, 현대글로비스 등 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그간 성장해온 중고차 시장을 새롭게 공략할 계획이다.
현대차 '성장 호르몬 주사' 놓는다
현대차가 이달 초 공개한 사업계획은 크게 상품·서비스, 정보제공·판매 경로, 기존 중고차 판매업자 상생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상품과 서비스 등 측면에서는 5년/10만㎞ 이내 현대차 브랜드 차량만을 매입한 뒤 신차에 가까운 수준으로 정비한 후 판매할 예정이다. 이후 중고차 고객에게 신차와 마찬가지로 전국 1,300여개 차량 서비스 대리점 블루링크에서 보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판매하는 중고차의 성능이나 상태, 이력, 시세 등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온라인 포털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가상 전시장을 구축해 소비자들이 온라인 경로로 매물을 살펴보고 구매하는 과정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전국 거점에 대규모 전시장과 타워 등을 구축해 차량을 실제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자체 사업 역량을 구축·강화하는 한편 시장점유율을 오는 2024년까지 연도별로 2.5~5.1% 등 수준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을 기존 중고차 업계에 공개하고 중소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서비스를 지원하는 등 협력해나갈 계획이다.
현대차는 "중고차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소비자와 중고차 시장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번에 사업 추진방향을 공개했다"며 "전체적인 중고차 품질과 성능 수준을 향상시켜 시장 신뢰를 높이고 중고차 산업이 매매업 중심에서 벗어나 확장되도록 기존 중고차업계와 협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기아도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중고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추후 현대차에 이어 중고차 사업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의 물류 전문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1월 론칭한 플랫폼 '오토벨'을 통해 중고차 거래를 중개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앞서 지난 2001년 설립된 후 줄곧 중고차 사업을 전개해왔다. 최근엔 분당, 시화(시흥시), 양산 등지에서 자동차 경매센터를 운영하며 월평균 1만여대 물량의 중고차를 취급하고 있다. 중고차 사업을 20년 이상 이어오는 동안 확보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고차 거래에 대한 시장 신뢰도를 높일 계획이다.
세 계열사가 중고차 시장에서 시너지를 일으킬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 양사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인 동시에,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두 완성차 계열사와 다른 성격의 사업을 자체 인프라로 전개하고 있어 그룹 내 협업 가능성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다만 각각 대기업인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그간 시장에서 쌓아온 인지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중고차 사업을 전개하는 점은 시장 성숙도를 상향 평준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나머지 국산차 업체 3개사는 중고차 사업에 관한 입장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회원으로 가입한 조직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입을 빌려 사업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KAMA는 중기부 심의위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 의결에 대해 환영하는 뜻을 담은 입장자료를 통해, 향후 6개월 내 3개사가 중고차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국산차 시장의 리더인 현대차의 인증중고차 사업 계획을 준용해 중고차 사업을 추진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SK, 발만 담갔던 중고차 시장에 '다이빙'
롯데와 SK는 그간 경매, 중개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영위해온 중고차 사업을 더욱 심화한 수준으로 전개해나갈 방침이다.
모빌리티 산업에서 성장 동력을 새롭게 찾고 있는 롯데는 그간 렌터카 사업을 전개해온 계열사 롯데렌탈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중고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그린카를 보유한 롯데렌탈은 이달 초 지분 투자한 차량공유 플랫폼 업체 쏘카의 역량을 활용해 오는 하반기 개인소비자 대상(B2C) 중고차 매매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쏘카가 그간 차량공유 사업을 전개해오는 동안 쌓아온 차량 관제 시스템의 운영 노하우를 활용할 방침이다.
롯데렌탈은 앞서 경매시설인 롯데오토옥션을 통해 중고차를 지난해 5만1,000여대 경매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왔다. 경매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차량 관리 전문 자회사인 롯데오토케어를 통해 매물을 점검하고 소모품을 교체하는 등 정비 경험까지 축적해왔다. 롯데렌탈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확보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향후 중고차를 판매할 뿐 아니라 중고차 렌탈, 경매 대행 등 솔루션으로 소비자들의 중고차 이용경험을 확장할 계획이다.
SK도 지난 2017년까지 중고차 전문 계열사 SK엔카닷컴을 운영하다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의 여파로 물러난 뒤 5년만에 시장에 재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렌터카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계열사 SK렌터카를 통해 중고차 사업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지난 22일 기준 현재 공식적으로 사업 추진 여부나 향후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SK렌터카는 현재 중고차 매매업자를 대상(B2B)으로 중고차를 연평균 1만5,000~2만대 가량 공매·경매하고 있다. 해당 물량은 장기 렌탈 서비스에 투입한 차량 중 계약기간이 만료된 차량들로 구성됐다.
SK렌터카는 이 같은 사업을통해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24%에 달하는 2,500억원을 벌어들이는 등 유의미한 규모의 수익을 거둬왔다. 그간 중고차를 매각하며 구축한 사업 네트워크와 역량을 향후 사업에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기존 SK엔카닷컴에서 물적분할해 만들어진 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중고차 판매 기업 케이카도 그간 정중동(靜中東)의 기조에서 벗어나 과감히 사업을 전개할 계기를 얻었다.
케이카는 지난해 기준 매출액 1조9,024억원을 기록하고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등 대기업이다. 다만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이전부터 경영돼옴에 따라 사업을 더 확장하지 않는 선에서 업력을 이어왔다. 중고차 시장이 이번에 개방됨에 따라 케이카의 행보도 더욱 탄력 받을 전망이다.
우버와의 협력으로 진행되는 티맵모빌리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가능성도 열렸다.
일련의 대기업들이 그간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중고차 사업에 관한 경험치를 높여온 점은 이번에 개방된 시장에 조속히 연착륙할 가능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앞으로 사업을 신속히 안정화할 뿐 아니라 상생 방안 등 시장의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경쟁 우위의 관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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