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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하게한 대통령, 무가베

NewBrain 2024. 12. 4. 16:21


한나라의 대통령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닳는다.

대통령이 되어 인구 수를 반으로 줄이고
국민의 평균연령을 60대에서 30대로 만들고
자신은 독재 1위 나라는 꼴등
김일성에게 배워 1위한 독재자된 무가베
나라의 경재 파탄 낸 대통령

짐바브웨의 제2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독립운동가이면서 초대 총리(1980 ~ 1987)이기도했다.


한때에는 백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며 무장 독립운동을 주도해 짐바브웨를 백인들로부터 해방시킨 독립운동가였지만,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에는 잔혹한 학살과 초인플레이션을 위시한 경제 파탄, 사치 등으로 국가를 파탄내어 국제적인 지탄을 받는 독재자로 전락한 인물로, 독재자가 된 영웅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국민들에게 줬다고 하는 것이 10만% 인플레이션과 80%의 실업률, 그리고 국제적 고립이다.


2009년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주말판 매거진 '퍼레이드'에서 선정한 독재자 순위에서 오마르 알 바시르(2위),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8위), 심지어 김정일(3위)[4]까지 모조리 제치고 당당히 세계 최악의 현직 독재자 1위에 선정되었을 정도였다.


2000년대 중후반에 발생한 초인플레이션[3]은 전 세계에 짐바브웨의 이름을 안 좋은 면에서 널리 알렸으며, 그 이전에도 무능한 경제정책으로 국민의 80%를 실업자로 만들면서 짐바브웨를 최빈국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고, 에이즈에 대한 무능한 대처로 환자를 2백만이 되도록 방치하면서 짐바브웨를 세계에서 가장 낮은 평균수명을 가진 나라에 소말리아를 뒤이은 취약국가지수 2위를 기록한 나라로 만들기도 했다.


독재자가 된 영웅


현재는 전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하나이자 아프리카의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지만 젊었을 적의 무가베는 짐바브웨의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으며, 로디지아 시절 실질적으로 독립운동을 지휘하여 백인정권을 패퇴시키고 백인정권에 신음하던 흑인들을 해방시키며 사실상 짐바브웨의 국부이자 흑인 독립운동의 대명사격 인물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던 인물로, 그 위상은 넬슨 만델라와 같은 위상이었다.



1960년대에 영국인들이 짐바브웨로 이민가서 농장을 사서 합법적으로 정착한 것까지 압수하고 폭도들이 이러한 농장주를 살해했다고 반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민자들은 그전의 식민지 시절에 백인들이 거저 얻은 그 땅을 산 것이었다. 땅 뺏은 뒤 뺏은 땅을 합법적으로 구매한다고 해도 흑인들 입장에서는 뺏긴 땅인 건 여전하다. 한국인 입장에서 치환하면 일제강점기에 매국노, 조선귀족들이 일제로부터 하사받은 후 후손들에게도 상속받은 땅과 똑같거나 그 이상인 포지션인 만큼 짐바브웨 정부는 콧방귀도 안 뀌었다. 결국 (일부 백인 이민자는 빚까지 져가면서) 비싼 돈주고 산 농장은 죄다 거덜났다.


문제는 이렇게 강탈한 농장들이 농사를 모르는 흑인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이다. 백인 농장주들이 토지 독점은 심했어도 선진 농업 기술로 짐바브웨 농업을 지탱했는데 그게 다 0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나마 농부에게 분배된 경우는 좀 나았지만, 대부분은 농장의 장비조차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농업에 무지하여 짐바브웨의 농업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런 핸디캡을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토지 분배를 추진한 점에선 무가베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예 소련처럼 강제로 트랙터 교육이라도 시켰으면 모를까 그마저도 안 했던 것이다. 특히 무가베의 큰 잘못은 토지개혁 자체가 아니라 대책 없이 즉흥적으로 시행했다는 점과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인기를 위해서라는 점이다.

막장 정책들 중 짐바브웨 경제를 몰락시킨 가장 큰 원인은 토지개혁이다. 광업과 비슷하게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농업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농업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예 2000년엔 2백만 톤에 이르던 옥수수 수확량이 8년 만에 고작 45만 톤으로 감소했다. 당연히 외환보유고는 거덜났고 서방의 제재로 인해 지원도 끊겨 경제는 파탄이 났다.


사회도 파탄나 2004년에 짐바브웨 인구의 1/4인 300만 명이 삶의 개선을 위해 외국으로 이민했고

2005년 기준으로 실업률은 80%에 육박하게 되었으며, 2009년에는 실업률이 무려 95%였다. 쉽게 말해 취업률이 고작 5% 미만

2007년 기준으로 빈곤율은 80%에 육박했다. 이 중 외국 이민은 심각해서 2007년 기준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학교사 80%가 짐바브웨인이었다.

또한 2008년엔 어린이들의 취학률은 겨우 20%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2008년 8월부터 1년간은 콜레라가 창궐해 98,000명 이상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1997년에 63세/54세였던 남성/여성 평균수명은 단 10년 만에 34세/36세로 줄어들었고,

관광 산업도 파탄났는데 밀렵은 더 늘어나서 환경까지 파괴되었다.

게다가 콜레라 사태 땐 무가베는 콜레라를 '영국이 개발한 생물무기'란 부적절한 말을 했고, 인권 탄압·경제 실책을 영국 및 미국 탓을 했다.



2009년 짐바브웨의 취약국가지수

114.0점으로 전체 2위를 차지했는데, 1위인 소말리아의 취약국가지수는 114.7점이었다.

이는 비소말리아 국가의 취약국가지수 중에서는 114.5점을 기록한 2015년의 남수단에 이어 단연 2위이고, 물론 전란을 겪지 않은 나라의 취약국가지수로는 압도적인 1등이다. 전란 없이 취약국가지수가 114점은커녕 105점을 넘긴 나라는 2006~2013년의 짐바브웨를 제외하면 기니(2009), 아이티(2013, 2016, 2017) 정도밖에 없고, 이들 중 최고점인 2013년 아이티(105.8점)도 최암흑기 짐바브웨의 기록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며, 당연히 전란 없이 취약국가지수가 110점 이상의 '매우 높은 위험'으로 분류되었던 나라는 2007~2010년의 짐바브웨를 제외하면 전혀 없다.

게다가 전란을 전혀 겪지 않았던 짐바브웨의 특성상 관점에 따라서는 최암흑기의 짐바브웨가 최암흑기의 소말리아, 수단, 남수단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짐바브웨를 제외하면 전란의 영향 없이 대규모 경제파탄에 시달린 나라는 북한, 베네수엘라밖에 없으며, 짐바브웨도 능가하는 경제 파탄을 보여주었던 자이르(오늘날의 콩고민주공화국)와 독립 초기의 몰도바조차 경제 파탄에 있어서 전란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다.



무가베 치하의 짐바브웨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유명


짐바브웨는 이미 농업도 망하고, 기업도 망하고, 자본은 해외로 빠져 나가고 하다보니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세수가 부족해진 상황이었지만, 경제개념이 전혀 없던 무가베는 오히려 돈 찍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짐바브웨 달러를 마구 찍어서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했다. 그리고 짐바브웨 경제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붕괴했다.

짐바브웨의 화폐는 같은 크기, 같은 재질, 같은 두께의 아무것도 인쇄가 안된 종이보다도 가치가 떨어졌으며, 때문에 짐바브웨 달러는 북한 원과 같이 절대로 위조지폐를 만들지 않는 화폐의 양대산맥이 되었다. 이는 도저히 위조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해서가 아니라 위조지폐를 만드는 노력과 비용이 화폐액면가보다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이션을 어떻게든이라도 막기 위해 정부가 고정가격제를 실시하자 모든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았으며, 짐바브웨의 경제는 문자 그대로 물물교환 체제가 되었다. 실제로 이발소를 운영하던 한 한국인 교민의 말로는 가게의 하루 거래액이 단순 금액으로 한국 정부의 10년 예산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며, 짐바브웨에 살던 외국인들과 대사들은 생필품 구매를 위해 짐바브웨 대신 이웃나라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가며 겨우 연명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는데, 실제로 중앙은행, 금융기관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공식 환율로 짐바브웨 달러를 미국 달러로 바꿀 수 있어서 미화 100달러를 가지고 짐바브웨 달러로 바꾼 뒤 이를 다시 은행에서 미국 달러로 환전하는 것을 반복하여 1백만 달러를 얻어낸 사람과 단돈 500달러로 벤츠를 산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짐바브웨 달러와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경제 파탄을 이끌어낸 무능한 독재자였던 무가베는 전술한 것처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제학 석사 출신이었다. 참고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제학과는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체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의 명문 중의 명문 경제학과다.

배움이 해결책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욕심은 끝이 없고 권력자의 탐욕은 나라를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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