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토픽 톱뉴스

가상화폐거래소, 실수로 잘못 입금된 비트코인 10억 '꿀꺽'…대법원 판단대로, 배임죄 무죄 본문

오늘의 알권리

가상화폐거래소, 실수로 잘못 입금된 비트코인 10억 '꿀꺽'…대법원 판단대로, 배임죄 무죄

NewBrain 2022. 2. 18. 11:40
100만원을 이체했는데 10억이 돼 입금됐다⋯잘못 이체된 비트코인 사용
이후 배임죄로 재판에 넘겨져⋯1심 징역 3년→2심은 무죄
민태호 변호사 "가상화폐가 법정통화에 준하지 않는다는 점 재확인한 사안"
누군가의 실수로 내 통장에 들어온 돈. 이를 슬쩍 했다가는 형사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라면 어떨까. 다른 사람의 비트코인을 마음대로 사용했으니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셔터스톡
누군가의 실수로 내 통장에 들어온 돈. 이를 슬쩍 했다가는 형사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라면 어떨까. 다른 사람의 비트코인을 마음대로 사용했으니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대법원은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체된 비트코인 200개(당시 약 15억원 상당)를 자신의 다른 계정에 옮긴 뒤, 일부를 유흥비 등에 사용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에 따른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에 있어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무죄 취지로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환송했기 때문. 당시 이 피고인은 1심과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된 상황이었다.
 
 
이러한 대법원의 기조에 따라 최근 2심에서도 무죄로 판단한 판결이 나왔다.
 
가상화폐 거래소 직원 실수로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지난 2019년 6월, A씨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보관돼 있던 비트코인 0.091개(100만원 상당)을 다른 거래소로 이체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체된 비트코인은 92개. 현금으로 환산하면 약 10억 2400만원에 달했다. 알고 보니 A씨의 이체 요청을 처리한 거래소 직원이 '0.091'을 '92'로 잘못 입력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A씨는 거래소 측으로부터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대신 비트코인으로 투자를 하거나,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전부 사용했다. 결국 A씨는 거래소 측의 고소로 재판을 받게 됐다.
 
1심, 배임죄 인정하며 징역 3년 선고⋯"가상화폐 보관할 임무 저버렸다"
A씨에게는 배임죄가 적용됐다. 특히, A씨의 경우 약 10억원에 달하는 재산상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이 적용됐다.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나 업무상 횡령·배임 등으로 얻은 이익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지난 2020년 5월, 전주지법 남원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곽경평 부장판사)는 "착오 송금된 돈과 마찬가지로 잘못 이체된 가상화폐도 보관할 의무가 있다"며 "그때까지 (피고인은) 피해 회사를 위해 가상화폐를 보호·관리할 임무가 생긴다"고 했다.
 
대법원 "비트코인, 법정 화폐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이는 항소심에 가면서 무죄로 뒤집혔다. 지난 9일, 광주고법 전주 제1형사부(재판장 김성주 부장판사)는 우선 A씨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앞서 나왔던 대법원 판단대로였다.
 
당시 대법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신임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자를 뜻한다"며 "(법정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경우엔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이러한 신임관계를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 이유로 "가상자산은 현재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다"며 "그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법정화폐가 착오송금된 경우, 마음대로 사용하면 형사 처벌되지만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가상화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였다.
 
A씨 사건을 판단한 광주고법 역시 그렇게 판단했다. 김성주 부장판사는 "(가상화폐를 잘못 이체한 사건에) 형법을 적용해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사상 돈을 돌려줘야 할 의무는 있지만, 형사상 처벌 사안은 아니다
법무법인 선승의 민태호 변호사. /로톡DB

 


법정 화폐가 아닌 비트코인을 임의로 사용했어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이를 처벌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판단이 이뤄진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란 "어떤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선,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 사건을 무죄로 이끈 법무법인 선승의 민태호 변호사는 "A씨에게 민사상 돌려줄 의무는 있지만, 그 자체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처리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 주장을 받아들인 판결"이라고 했다. 또한, 민 변호사는 "가상화폐에 재산상 이익은 있지만 법정통화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점이 (대법원 판단에 이어) 다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A씨가 비트코인을 돌려줄 민사상 책임은 있다. 하지만 법률 위반에 따른 형사 책임을 질 사안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A씨 사건은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으면서 무죄가 확정됐다.